언어예절

손주

장수골 2014. 3. 9. 18:23

없는 단어 '손주', 애매한 단어 '나물'

國語 이야기(1)

  •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 1) ‘손주’란 단어는 없다
     

    요즘 ‘손주’라는 말을 ‘손자ㆍ손녀’를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TV 등에서 야금야금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표준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방송 등에서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는데 요즘엔 거의 모든 신문이 이 말을 손자ㆍ손녀의 통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다 보니 이제는 인터넷 국어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손주라는 말은 죽었다 깨어나도 손자ㆍ손녀란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손주라는 단어 자체가 없습니다.

     

    손주는 ‘손자(孫子)’의 경기지역 사투리로, ‘삼촌’을 ‘삼춘’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특정지역의 발음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삼촌’은 ‘삼춘’이라고 발음해도 그 뜻이 변함이 없지만, 손주라는 말은 발음도 잘못된데다, 그 뜻까지 손자와 손녀를 통칭하는 엉뚱한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 TV 출연자들이 ‘손자’를 ‘손주’라고 발음하는 것이야 당사자의 출신 지역과, 우리의 표준말이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방송이나 언론 등에서 이 말을 전혀 엉뚱한 뜻으로 쓰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문제입니다.

     

    이를 그냥 두면 ‘삼촌’이란 말도 얼마 가지 않아 ‘삼춘’이란 말로, ‘했고요’는 ‘했구요’로, ‘~하고’는 ‘~하구’ 등으로 바뀔 것입니다. 아울러 그 뜻도 엉뚱하게 바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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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손주를 검색하면 모든 언론에서 예외없이 손자ㆍ손녀의 통칭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나물이 뭔지 모르는 사람 많다

     

    어느 날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다가 건네 편에 앉은 사람보고 “거기, 나물 좀 건네 주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여자 분은 건네 달라는 나물 바구니는 주지 않고 식탁 위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았습니다. 저는 또다시 “나물 바구니 거기 옆에 있잖아요”했습니다.  그러자 여자 분이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호호호, 이게 나물이에요? 야채지. 나물과 야채도 모르세요?”하며 놀리는 것입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분들도 “시골서 자랐다면서 나물이 뭔지도 몰라요?”하며 덩달아 구박을 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어리둥절 해졌습니다. ‘아니 언제 내가 알고 있던 나물의 개념이 갑자기 바뀌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저와 고향이 같은 경상도 사람도 몇명 있어서 “이 바구니에 담긴 것이 나물 아니에요?”하고 응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도 하는 말이 “야채 아니에요?”하며 제 편을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구니에는 상추가 가장 많았고, 그 외 깻잎 등 삼겹살 쌈을 싸 먹는 각종 채소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씩 나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대답은 “상추와 배추는 야채에 포함되지만, 나물에는 포함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심지어 “양념으로 무친 것만 나물”이라고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누구는 취나물 등 산나물이 자기가 아는 나물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럼 무청이나 시래기 등은 나물이냐?”하고 물었습니다. 모두의 대답은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나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먼저 나물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를 보겠습니다.
      
    나물에 대한 인터넷 국어사전 검색
      
    A 사전

    1. 식용할 수 있는 나뭇잎이나 풀을 통틀어 이르는 말, 또는 그것을 무친 반찬.
    2. 채소를 여러 가지 양념으로 무친 반찬. 채(菜).
      
    B 사전

    1.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고사리, 도라지, 두릅, 냉이 따위가 있다.
    2.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삶거나 볶거나 또는 날것으로 양념하여 무친 음식.


    즉, 사전에 의하면 나물은 몇몇 특정 채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들에서 나는 먹는 풀은 전부 나물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평소 알고 있던 나물의 개념과 같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나물은 상추, 배추, 무청, 취나물, 콩나물은 물론, 양배추, 말린 무 잎인 시래기, 고사리까지 모두 나물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를 무친 것도 나물에 들어갑니다.

     

    채소는 나물보다 폭넓은 개념입니다. 무, 감자, 고구마 등 뿌리 식물(고구마는 줄기 식물이지만 편의상)과 상추, 배추 등 각종 잎 식물, 오이, 토마토 같은 열매 식물 등이 모두 채소에 들어갑니다(혹은 야채: 야채는 일본에서 온 단어, 국어사전 등에도 야채와 채소 이 둘은 구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물은 채소에 포함되지만, 나물 속에는 채소에 포함 시킬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나물은 대체로 거의 모든 잎채소를 일컫는다고 생각하면 좀 편하지만 사실 나물은 좀 더 복잡합니다.

     

    먼저 산에서 나는 산나물이 있습니다. 산에서 나는 먹을 수 있는 온갖 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상추, 배추 같은 기르는 나물이 있습니다. 콩나물처럼 콩에서 변형되어 나온 이상한 나물도 있습니다. 

     
    무치거나 버무려야 나물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고춧잎은 그냥은 못 먹습니다. 그러나 삶아서 양념에 무치거나 버무려서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면 나물이 됩니다. 나무가 나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릅나무는 나무에 속합니다. 그러나 두릅나무 잎을 따서 무치는 순간 나물이 됩니다. 

     
    박이나 수박, 호박은 과일이지만, 어린 박 껍질 안쪽 부분은 생채로 얇게 치면 ‘박나물’이 됩니다. 무는 생채로 만들면 그냥 ‘무생채’라고 하지만, 살짝 데치면 무나물이라고 합니다. 무 잎(무청)은 무에서 떨어져나오는 순간 나물이 됩니다. 제가 아는 나물이란 개념이 사람에 따라 이처럼 다르게 사용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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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봄나물./조선DB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4-03-08 오후 6:02:00  |  수정일 : 2014-03-0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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