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대성암에 있는 조선 전기 목판본 『집주두공부초당시(集註杜工部草堂詩)』.
[개설]『집주두공부초당시』는 중국 남송(南宋) 때 채몽필이 당(唐)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시에 대한 여러 주석을 모아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두공부’는 두보가 공부원외랑이란 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두보가 중국 성도(成都)의
초당에 거주했던 시기부터 창작한 시를 모았기 때문에 ‘초당시’란 명칭이 붙은 듯하다. 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초당시』는 1431년(세종 13) 11월에 남송본을 들여와
번각(飜刻)하여 간행한 것이다.
[형태]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초당시』는 『집주두공부초당시』의 제33권에서부터 제40권까지를 모은 8권 1책이다.
형태는 닥종이[楮紙]에 목판본(木版本) 선장(線裝)으로 반곽의 크기는 24.6×15.8㎝이다.
[구성/내용]세종 때 제도의 정비와 문화 사업을 통해 조선왕조의 기반이 안정되면서,
사대부들이 여유를 찾기 시작하였고 한시 창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당시 중국의 유명한 시인의 시집들이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고초당시』는 1431년(세종 13) 밀양에서 목판본으로 출간되었는데, 발문(跋文)은 예천 출신으로 당시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였던 별동(別洞) 윤상(尹祥)이 찬하였다. 발문에 따르면 두보 시의 학습을 갈망하던 사대부들의 바람에 따라 1430년 관찰사 조치(曺致)가 주선하고 밀양부사 유지례(柳之禮)가 주관하여 간행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초당시』가 간행된 지 약 40여 년이 지나 성종 때에 비로소 두보의 시가 언해되기 시작하는데, 이처럼 성종 때 『두시언해(杜詩諺解)』가 나오게 된 데에는 세종 때 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초당시』가 간행되어 널리 퍼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간행된
시기가 분명하고 연대가 오래되어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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