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려기술제3권
세종조의 유종(유종)
윤상(윤상)
윤상은 자는 실부(실부)이며, 처음 이름은 철(철)이고, 호는 별동(별동)이다. 본관은 예천(례천)이고, 조용(조용)의 문인이다. 태조 임신년에 나이가 20세 진사에 올랐고 다음 해에 생원(생원)을 거쳐 병자년(1396)에 문과에 올랐다. 성균관 대사성으로 16년이나 있었고, 벼슬이 예문제학에 이르렀다. 을해년에 죽으니 나이가 83세였고, 시호는 문정공(문정공)이다.
○ 공은 자질이 아름답고 총명이 뛰어나게 태어났다. 향리로서 고을 일을 맡아 볼 적에 고된 사무를 보면서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오고갈 때 반드시 관솔[송명]을 따서 관사 은밀한 곳에 두었다가 밤에 글 읽을 때 썼다. 문과에 급제하여 선산(선산)ㆍ상주(상주) 등지의 교수(교수)가 되었다.
○ 원손(원손)이 성균관에 입학하자, 대사성으로 특명을 받아 원손의 입학을 지도하는 박사(박사)가 되니, 선비들이 이를 영광으로 여겼다.
○ 문종(문종) 초년에 치사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곳의 관아로 하여금 달마다 음식물을 주게 하였으니, 퇴로(퇴로)한 재신(재신)에게 음식물을 내리는 일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 공이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그 학문이 세 김씨 아래에 쓰였다. (김구(금구)ㆍ김말(금말)ㆍ김반(금반))에 비하여 더욱 뛰어 났으므로 모든 선비들이 다투어서 그에게 배웠다. 공은 실오리처럼 올올이 가늘게 분석하여 일러 주되 종일토록 근면하여 피곤한 줄을 몰랐다. 그시대의 달관(달관)과 문인(문인)이 모두 그의 제자였으니, 조선 개국 이래 사범(사범)으로서 제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