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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을 바꾼 소나기(2018 .2 .13)

장수골 2018. 2. 1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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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소나기

배환의 스승인 죽계 조용선생이 예천고을 사또로 왔을 때의 일이다. 대학자인 죽계선생은 조정의 정쟁에서 벗어나 지방의 작은 고을에서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관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철이라는 아이가 늘상 마당을 종종 걸음으로 뛰어다니며 심부름을 했다. 사또는 방에서 책을 읽다가도, 관아에서 업무를 보다가도, 방에서 밥을 먹다가도 눈을 밖으로 잠시 돌리면 늘상 철이라는 아이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마당을 가로지르며 바삐 뛰어다녔다. 그리고 늘 뭔가 혼자 중얼중얼 거리고 있었다. 간혹 사또가 불러 일을 시켜보면 말귀도 잘 알아듣고 대답도 또렷하게 잘하였다.

하루는 마당을 가로질러가는 아이를 보며 옆에 있는 이방을 불러

"이방, 저 아이는 누구요?"

라고 묻자 이방이

"네, 집이 가난해서 관아에 심부름을 하는 윤철이라는 아이입니다. 아이 애비는 윤선이라는 사람인데 늙은 나이에 요상하게 아들 하나를 얻었죠. 참 사람이 아주 좋고 아이도 애비를 닮아 참 착실합니다. 저 녀석이 아주 똑똑해서 일을 시키면 틀림이 없습니다."

"요상한 방법으로 아들을 얻다니? 어떻게 얻었단 말인가?"

"네, 애비란 자가 나이가 들어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지성을 어려모로 들이다가 주인 없는 무덤에 가서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더니 꿈에 무덤 주인이 나타나 학 한마리를 건네줬다고 합니다. 그 것이 태몽이었던 모양입니다. 학을 태몽으로 꿔서 그런지 아주 애가 똑똑합니다."

"그런데 저 아이는 왜 늘 중얼중얼 거리며 뛰어다니는가?"

"네! 사또, 늘 중얼거리며 다니는 것은 책에 있는 구절을 외우느라 그런답니다. 워낙 가난해서 서당을 다닐 처지도 못되죠. 밤에도 관솔 불을 피워서 책을 읽는다는데...... 그럼 뭘 합니까? 평생 관아 심부름꾼으로 살거나 아니며 어느 집 머슴으로 살겠죠."

라고 이방은 칭찬과 안타까움을 사또에게 전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제자인 사또는 사람보는 눈이 있었는지 아이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철아~ 철아~"하고 아이를 부르니 아이가 쪼르륵 뛰어왔다.

"사또 부르셨습니까?"

"하늘을 보니 소나기가 올것 같구나. 관아의 장지문을 모두 닫도록 해라."

"네, 사또"

라고하며 아이가 고개를 꾸뻑 숙이는 모습을 사또는 재미있는지 웃음을 띄고 바라봤다. 아이는 사또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또 종종 걸음으로 뛰어갔다.

사또는 이방을 불러

"이방 내가 시킨대로 했는가?"

"네! 사또, 사또께서 시키신대로 장지문 가운데 하나에 물이 가득든 놋대야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래 알았네."라고 고개를 끄덕 거리며 사또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억수같은 장대비가 내리는데 비를 뚫고 아이가 사또에게로 뛰어왔다.

"사또 시키신대로 장지문을 모두 닫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보고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사또가 입을 땠다.

"그래 별일 없이 장지 문을 다 닫았단 말이지?"

"네! 사또, 평소에 시키시지 않던 일을 직접 시키셔서 혹여나 무엇이 있어 다칠까 염려되어 긴 막대로 장지문을 더듬어보고 닫았습니다."

사또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빗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그래, 철아 넌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지."

"네 사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 오늘 저녁부터 일이 끝나면 사랑채로 오너라. 내 방에 책이 많으니 함께 읽자꾸나."

아이가 놀라 고개를 들어 사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또가 온화한 미소로 아이를 내려보고 있었다. 아이도 사또를 바라보며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비가 그쳐 낙숫물이 똑똑 떨어지고 햇볕이 다시 마당을 비쳤다.

예로부터 큰학자는 큰학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사또인 죽계 조용은 대사성으로 자그마치 16년을 있었던 인물이다. 그가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낸 순간이었다.




어느 여름날 밤,

"이 놈! 네 놈이 훔쳤겠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호령을 했다. 주위에 동네 사람들이 둘러 싸고 있고 가운데 한 나그네가 건물 기둥에 밧줄로 묶여있었다. 간간히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내가 그러지 않았소만 내일 아침이면 내 결백이 밝혀질 것이요."

너무 꽁꽁 묶여 선비의 팔에 피가 통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집 밖으로 나가고 그들을 배웅한 집주인이 나그네를 향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침이 마당에 작은 물웅덩에 떨어졌다. 선비가 물끄러미 물웅덩이를 쳐다봤다. 참 처량한 신세다. 오후부터 내린 비때문에 마당이 질퍽하고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다시 밤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간간히 바람이 불어 몸이 으실으실 추웠다. 그렇게 선비는 밤을 새워야했다.




그날 저녁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 선비가 주막에 찾아들었다. 비는 내리고 날은 저물었으니 하룻밤 묶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주막 안으로 들어 밥상을 받으니 비가 그쳤다. 그집에 키우던 닭들과 거위가 비 그치기를 기다리다고 우리에 있다가 비가 그치자 마당으로 나가 돌아다녔다. 주인집 손자로 보이는 어린 아이도 뒤뚱거리며 마당을 걸어다녔다. 선비는 밥을 먹으며 그 한가로운 모습이 보기 좋아 마냥 바라보는데 아이의 손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손에서 그것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구슬이었다. 구슬이 떨어지자 마자 거위는 그것을 먹이로 잘못알고 주워먹어버렸다.

집 주인은 나그네인 선비를 의심하고 동네사람들을 불러 밧줄로 묶어 관아에 데려가려했다. 선비는 거위와 자신을 같이 묶어두면 내일 아침 틀림없이 구슬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선비 옆에 묶여 있던 거위똥에서 진주구슬이 발견되어 선비는 오해를 풀게되었다. 선비는 팔의 옷을 걷어올려 묶인 자리를 확인했다. 간밤동안 묶여있던 팔에 피가 통하지 않아 밧줄 모양대로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본 주인이 미안한 마음에 사죄를 하며

"선비 양반 어제 말하면 될 것을 왜 하지 않았소?"

라고 하니

"급한 마음에 진주 구슬을 찾겠다고 거위를 죽일 것이니, 내가 하룻밤만 고생하면 구슬도 찾고, 거위의 목숨도 구할 것 아니요."

라고 했다. 집 주인은 감복하고 미안한 마음에 돈을 건넸으나 선비는 받아들지 않았고 아침 밥을 먹고 다시 주막집 문을 나섰다.

"선비 양반, 내 미안해서 그러오. 이 짚신과 주먹밥이라도 좀 받아 가시오. 먼길 가면 몇커리 필요할꺼요. 그리고 어디 사시는 뉘신지 이름이라도 좀 알려주오."

하며 통 사정을 했다. 할 수 없이 선비는 짚신과 주먹밥을 받으며

"예천 고을에 사는 윤상이라고 하오."

하고 말하고 가던 길을 갔다.

윤상의 아명은 철이었다. 가난한 평민의 집에서 태어나 양반이 되었으며 뒷날 문종에게 절을 받은 최고의 학자가 된 인물이다. 스승인 죽계(송정) 조용이 대사성으로 16년 있었고 제자인 별동 윤상도 대사성으로 16년 있었다. 조선의 선비 가운데 조용의 학맥을 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의 대학자였으나 오늘날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렸다.

포은 정몽주 - 죽계 조용 - 별동 윤상 - 강호산인 김숙자 - 점필재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조선 학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훗날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성균관 유생들이 시위를 하며 스승으로 다시 모셔야한다고 했으며 수차례 많은 대신들이 별동 윤상 선생이 교육을 맡아야한다고 왕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세손(왕의 손자)인 단종을 가르치게 되어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이 고마움에 절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리고 명종 22년(1567) 가을, 중국에서 사신이 와서

"동방에 공맹(孔孟)의 심학(心學)을 능히 아는 사람이 있는가?"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퇴계 이황선생이 고려의 우탁, 정몽주와 조선의 김굉필, 정여창, 윤상, 이언적, 서경덕의 7인을 적어 보여주었다고 한다.

요즘 같이 교육이 흔들리는 시대에 본 받을만한 두 스승 죽계 조용선생과 별동 윤상선생의 행적이 눈에 들어온다. 한나라의 교육의 책임자가 16년간 같은 정책을 펴고 그 제자가 다시 16년간 같은 정책을 폈다는 것도 대단하며 그 둘은 늘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귀천을 따지지 않고 진흙 속에 진주를 찾아내었고 사람도 아닌 거위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았는가?
별동선생은 조정에 계시면서도 스승인 죽계 조용선생을 닮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보면 불러 가르쳐 나라에 기둥으로 키워냈다고한다. 멘토가 필요한 요즘 시대에 우리가 그리는 멘토가 이 두분이 아닐까?

출처 : 동부 여행정보
글쓴이 : 암마두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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